법과 정서간의 괴리(김병현 사건을 보면서...)

김병현 선수가 결국 불구속입건됐습니다. 김병현의 팬과 네티즌들은 물론 많은 젊은이들이 김 선수의 불구속 입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불만은 여러가지겠죠.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고 그 의혹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경찰이 이건 기자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폭행에 이르기까지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 또 굿데이를 비롯한 스포츠신문과 일부 언론의 '김병현 죽이기'식 보도까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김병현 선수의 불구속 입건은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또한번 법과 일반 국민들의 정서 사이에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도 길지는 않지만 몇개월간 경찰기자 생활을 해봤습니다. 처음 언론사에 입사하면(수습기자) 사회의 밑바닥부터 경험해봐야 한다는 뜻에서 거의 예외없이 경찰기자 생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하기 싫은 힘든 기간입니다. 집에 들어가서 자는 날은 한달에 2,3일 정도고, 나머지는 잠자는 시간(너서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경찰서만 돌아다닙니다. 밤에는 선배기자에게 밤새도록 술(폭탄주)을 마셔야했고....)

기자들 사이에선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각종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사스마와리', 또는 '사쓰마리'라고 부릅니다. 경찰서를 돌아다닌다는 뜻의 한자 '察回'의 일본어라고 할 수 있죠.요즘은 일제 식민지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습관적으로 일본용어를 사용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예컨데 '제목'을 '미다시'로, '기사의 핵심'을 '야마'로 부르는 것 등이었습니다.

주제와는 약간 벗어났군요.... 다시 돌아가서...

경찰서에서 밤샘취재를 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발로 경찰서에 온 사람이 아니라면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겠죠... 가장 많이 만나는 부류는 바로 폭행사건 관련자들입니다. (술먹고 행패부리는 사람은 파출소 선에서 해결하고, 범죄혐의가 있을 경우엔 해당지역의 경찰서로 이송되죠)

그런데 폭행사건 피해자나 피의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반적인 정서로는 피해자(맞은사람)가 더 나쁜 놈인것 같은데, 처벌을 받는 쪽은 피의자(때린사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병현 선수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는 폭행사건에 대한 판단기준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거의 다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폭행혐의가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러 상대를 가격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 [왜 때렸는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왜 때렸는가], 즉 폭행의 발생원인은 참고사항이며, 이는 나중에 법원판결시 형량에 일부 반영될 뿐입니다.(물론 법원에서 폭행사실보다는 발생원인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무죄판결을 내릴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죠)

즉 죄가 있냐없냐의 판단은 [먼저 때렸느냐] 여부가 가장 중요하며, 폭행의 발생원인과 사후조치는 형량을 결정하는데 조금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얼마나 많이, 강하게 때렸느냐가 형량결정에 더 큰 영향을 주겠습니다만...

그래서 폭행과 관련해 경찰서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싸움이 일어나면 (때리지 말고) 무조건 맞아야 한다."

이런 속담도 있죠. '맞은 놈이 발뻣고 잔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법의 맹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죠.

상대방을 (말로만) 바짝 약올려 주먹을 휘두르게 만들어 한두대 맞은 뒤(따귀만 한대 맞아도 최소 전치 2주 이상 나옵니다.) 경찰에 고소해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이런 사건을 한번이라도 당하거나 주변사람이 당한것을 보고나면 '무슨일이 있어도 먼저 주먹을 내밀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가위바위보할때는 주먹을 먼저 내밀어도 됩니다^^)

경찰은 김병현 선수 사건과 관련해 CCTV가 충분한 증거자료가 됐다고 밝혔고, 또 그것을 근거로 김 선수를 입건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때(검찰이나 법원에서 뒤집어질수도 있겠지만, 일단 경찰을 믿는다고 가정하고) 경찰이 확신을 갖고 입건했다면(확신이 없으면 입건하지도 않았겠죠), 적어도 CCTV에 나온 화면(비록 1분밖에 안되도)에는
김 선수가 먼저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먹을 휘둘렀건, 밀어 넘어뜨렸건간에...)

김병현 선수 본인이나 팬, 또는 (김 선수를 옹호하는) 네티즌의 입장에서는
울화가 치밀수밖에 없는 결정이겠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물론 검찰조사에서 CCTV에 나온 화면이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면, 검찰이 재수사조치와 함께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내거나, 아예 무혐의 처리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 선수의 팬이나 많은 네티즌들은 이번 경찰의 불구속 입건조치가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굿데이나 사진기자가 더 잘못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왜? 일부(또는 대다수) 언론은 김병현의 잘못을 더 부각시켰고, 심지어 편파, 왜곡보도에다 참고인 조작 냄새까지 나니까요....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봅시다.

언론의 보도가 잘못됐다고 김 선수의 혐의가 없어질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김 선수 사건과 언론의 왜곡된 보도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폭행사건과 초상권침해 또는 명예훼손 사건은 별건으로 처리돼야 합니다.

사법부가 폭행혐의를 인정한다면 깨끗이 승복하고, 대신 초상권침해나 명예훼손(법리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혐의로 굿데이를 비롯해 악의적인 보도를 한 언론이나 이 건 기자를 고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언론을 상대로한 싸움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싸워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죠.... (특히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 그래서 국내언론의 인권침해 사례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법원을 출입(취재)하면서 한번은 판사들과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주제는 '언론보도의 인권침해'였죠.... 그때 언론분쟁을 담당했던 부장판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경찰서나 검찰청사 입구에서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서 사진을 찍히는 장면이 많죠. 사실 그거 피의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걸면 100% 언론사가 집니다.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으면 언론사가 무조건 진다고 보면 되고,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언론사가 패소합니다."

우선 피의자라는 신분은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고, 또 법원(또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법원이 피의자에 대해 벌을 내린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언론에서 피의자의 얼굴까지 보여주며 보도한 것은, 그 피의자가 마땅히 받아야할 벌(법원에서 결정한) 외에 또다른 벌(인권침해)을 받게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김병현 선수가 사진기자를 만났을때 '사진찍지 마세요'라고 말을 한 뒤, 그럼에도 사진을 찍어댄다면 아무말없이 그 자리를 떠난 뒤, 해당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인권침해나 초상권 침해 혐의로 소송을 낼 수는 있을것 같지만, 그렇다고 폭행혐의가 없어지는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by 예나아빠 | 2003/11/24 17:37 | 아빠의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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