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당신 말이 맞습니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이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취임 1주년을 앞둔 지방법원을 순시하면서 한 발언들 때문이다.


"검찰이 밀실에서 받아놓은 조서는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사람을 속이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등의 발언이 검찰과 변호사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22일자 조간신문이 모두 이 논란을 1면 톱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제목...


[경향] 李대법원장 발언에 대한변협 “즉각 사퇴”

[국민] 변협 "사법불신 책임 사퇴"…대법원장 檢·辯 무시 발언 파문 확산

[동아] 검찰총장 “대법원장 발언 유감” 변협 “즉각 사퇴하라”

[서울] 검찰총장 “대법원장 발언 유감”

[세계] 변협 "대법원장 물러나라”

[조선] 검찰 “유감” 변협 “사퇴하라”

[중앙] 변협,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 요구

[한국] 대법원장 발언… 법원 vs 검찰·변협 충돌

[한겨레] 법원 “공판중심주의” 검찰 “수사환경 훼손”


조.중.동과 경향, 국민, 서울, 세계, 경향 등은 검찰의 유감표명과 변협의 사퇴요구를 제목으로 뽑았고,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은 비교적 공정하게 양측의 대결구도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논란의 핵심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과연 문제가 없었나 하는 부분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법원장의 발언이 잘못됐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잘못된 발언들인가?


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아무리 읽어봐도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한 것 뿐인데... 법원은 국가를 구성하는 3대 기구인 입법, 사법, 행정의 한 축이다. 판사는 어떠한 사건에 대해 최종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다. 반면 검사나 변호사는 다툼의 주체다. 자기(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뛰는 선수일뿐이다. 당연히 자기에게 유리한 일방적인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따라서 축구경기처럼 검사와 변호사는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 임무가 있다. 때로는 반칙(검사는 강압수사, 변호사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기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사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반칙을 잡아내야하고, 헐리우드 액션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 판사들은 그러질 못했다. 힘이 센 검찰의 주장을 많이 받아줬다. 물론 가끔은 전관예우라는 것을 내세워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법원 판결문이 검찰의 조서를 베낀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은 검사나 변호사를 향한게 아니라 판사를 향한 것이다. 검사나 변호사의 현란한 말놀림에 속아 넘어가거나 (정치검사의) 힘에 떠밀려 검찰의 주장을 의심없이 받아주지 말라는 얘기다. 이 이야기가 뭐가 잘못됐나?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닌가?


과거 검찰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아마 지금도 체포나, 구속 등은 검찰이 권한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체포나 구속, 압수수색 등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법원이다. 즉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만 체포나 구속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법원이 검찰이 제출한 영장에 대해 대부분 발부해줬다. 왜? 군사정부시절 검찰은 독재권력의 행동대장이었고, 법원은 사실상 검찰이 내민 영장에 형식적으로 싸인해주는 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판사가 감히 검사한테 대들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검찰도 더이상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다. DJ때만해도 아주 가끔 정치검사라는 말들이 튀어나왔지만 지금은 없다. 검찰독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검찰도 바라던 바다. 검찰독립... 그런데 독립하고 나니 힘도 약해졌다. 어깨에 힘주고 다디던 과거가 그리울께다.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후진국일수록 경찰기사(경찰에 관련된 기사가 아니라 경찰이 수사중인 사건을 취재하는 기사)를 크게 다루고, 그 다음이 검찰기사, 그리고 법원 판결기사는 조그맣게 처리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반대로 선진국에서는 법원기사가 가장 크게 다뤄진다고 한다.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진행상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인권보호 차원에서다.


우리도 7,80년대에는 특정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상황 위주로 보도했다. 그러다 90년대부터는 검찰의 수사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그래서 7,80년대에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가 가장 많았고, 90년대부터는 경찰서 출입기자보다는 검찰 출입기자가 쏟아내는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전부터 이미 언론의 여론재판으로 집중포화를 맞는다, 나중에 무죄로 판명나더라도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나쁜 놈'으로 낙인찍힌 후다.


검찰(경찰)이나 변호사는 목적을 갖고 수사를 한다. 범죄사실을 밝혀내는게 검찰의 임무고, 무죄를 입증하는게 변호사의 임무다. 반면 판사는 목적을 가져서는 안된다. 검사와 변호사의 상반된 의견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려내는게 판사의 임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혹시 검사의 말에 과장된 것은 없는지, 변호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검찰의 조서나 변호사의 논리를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확고부동한 증거 외에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은 지극히 옳은 얘기다. 이 발언을 놓고 마치 하지 못할 말을 했다는 식의 언론보도는 다른 목적이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by 예나아빠 | 2006/09/22 12:21 | 아빠의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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